자살-뻘소리

오늘 발표했던 타락론과 포로기, 이 두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직, 간접적으로 죽음이 나타나는데...
얼마전 얼어붙은 입에서도 '자살'에 대해 이야기했고.
말해두지만 나는 '자살 긍정파'이다.

타락론에서는 47명의 사무라이 이야기(이게 쥬신쿠라가 맞나?)나 전쟁시의 이야기를 하며 죽는 것을 '아름다운 상태로 끝나게 하고픈 바람'이라고 표현한다.
그와 동시에 살아가는 것을 타락해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긍정하고 살아가고 타락한 끝에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포로기에서 주인공은 죽으려고 여러번 시도하지만 결국 살아남으려고 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그런거 아닐까? 사람은 그냥 내버려두면 대개는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기 위해서는 어떤 이유가 필요한거다...
그게 충의나 성전을 위한 것이라는 환상이든, 절망에 끝에서 도망치기 위한 방편이든...
비극 아니면 희극으로 딱딱 끝나는 이야기들을 보면 대개는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하고 끝나거나 죽음으로써 비극적 엔딩을 맞고 끝난다.
그런의미에서 보면 사람의 인생이란건 정말 재미없는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클라이맥스가 왔는가 했는데 끝나진 않고 질질 이끌어가다 대개는 허무하게 끝나는 드라마.
화려한 클라이맥스가 왔다, 내 인생에 두번다시 없을 빛나는 순간이 왔다. 그런 순간에 대부분의 인간은 그것을 좀 더 음미하고 그 다음을 보고싶어한다.
물론 십여년전 자살한 서지원처럼 오히려 빛나는 순간 다음에 올 추락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전쟁이 일어나면 대개의 인간은 살기위해 발버둥친다. 화재가 일어나면 대개의 인간은 살기위해 불을 피해 달아난다. 그게 인간 본성이다.
긴 고뇌의 시간이 있다면 절망에 익숙해지거나, 포기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주지 않았을 때 즉각적으로 나오는 반응은 살아가기위한 몸부림이다.
나는 자살을 긍정하지만, 이러한 몸부림도 긍정한다.
이러한 본성을 뛰어넘을 만큼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도 어떤 의미에선 용기라고 생각한다.
천황을 위해 이 한목숨 바치고 싶다고 한다면 물론 그것도 자유다. 물론 이 경우에는 자기 혼자 죽겠다고 하는게 아니라 문제가 되지만.
요는 스스로의 목숨을 어떻게 하는지는 자신의 자유라는 것이다. 좀 지난 언젠가, 스타킹에 나와서 강인이랑 사진 한방 찍었다가 악플폭격맞고 자살한 여중생, 온갖 루머에 시달려 자살한 최진실. 슬픈일이다. 그러나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한 상황을 만든 자들에 대한 단죄와 문제의식은 물론 따라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여중생이나 최진실이 그렇게나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리석은 짓을했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끝내는데 있어 당연히 책임의식은 필요하다. 최진실의 남겨진 아이들처럼. 하지만 자살하는 사람이 남겨진 것들에 대해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의 끝에 내린 결론이 책임감에 대한 도피이든 뭐든. 어찌되었든 그 자신에게는 그것들을 넘어서서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가, 그 순간에는 분명히 있었을 거다.
대개는 그 순간을 넘기면 살아남는다. 본성이 그러하기에. 그렇지만 그 순간을 넘기는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런 것 같다.

by 엘로이터 | 2008/11/25 14:44 | Dog'matic segment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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